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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아침을 열며

아침을열며4/오바마·시진핑은 중산층에 응답하라

조찬제 국제부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재선과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의 최고 지도자 등극을 약 1주일 간격으로 보는 일은 동시대인으로서는 드문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세계 최강대국 지위를 유지해야 하는 오바마와 그 자리를 넘보는 시진핑 간 대결은 세기의 볼거리가 아닐 수 없다. 두 사람이 펼치는 정책과 지도력에 따라 세계는 좌지우지될 것이 뻔하다. 두 사람이 만들어갈 세계가 갈등의 장이 될지, 화해와 협력의 장이 될지는 엄밀히 말하면 국제정치학자들의 주된 관심 영역이다. 일반 미국인이나 중국 인민들이야 자신들의 삶을 풍요롭게만 해준다면 어떻게 하든 만족할 것이다. 오바마와 시진핑 두 사람에게서 공통분모를 찾는 일은 쉽지 않지만 두 사람 앞에 놓인 과제와 관련한 주제어는 찾을 수 있다. 바로 ‘중산층’이다.

 이번 미국 대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유례없는 돈잔치였다는 점이다. 대선과 상·하원 선거에 투입될 자금이 60억달러(약 6조1000억원)를 돌파해 사상 최대의 돈선거가 될 전망이라는 보고서(미국 책임정치센터)도 나왔다. 대선 26억달러, 상·하원 선거 18억달러 그리고 연방선거법의 자금 규제에 제한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후원단체를 일컫는 ‘슈퍼팩(정치행동위원회)’ 모금액을 합친 것이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미국의 이 같은 돈선거를 빗대 “자본가들의 전쟁터”라고 비아냥댔지만 크게 틀린 평가는 아닌 듯싶다. 미국의 큰손들이 오바마나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후원하면서 원하는 것은 현상유지일 테니 말이다. 실제로 일부 기업가들은 건강보험개혁안 ‘오바마케어’를 위해 증세를 약속한 오바마가 당선되면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고 위협하는 등 투표 방해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오바마는 집권 4년과 대선 과정에서 중산층을 배려하는 데 인색했다. 그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재임기간 1933~1945) 이래 처음으로 실업률이 7.2%를 넘는 상황에서 재선에 성공하는 신화를 썼다. 하지만 오바마 집권 동안 미국의 중산층은 무너졌다.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많은 이가 하층민으로 전락했다. 무너진 중산층의 배반감은 대선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미국 50개주 주민들 가운데 38개주에 사는 이들은 이번 대선 유세 동안 오바마를 본 적이 없다. 오바마는 미국 특유의 선거제도인 ‘승자독식제’에 따라 선거의 승부수가 걸린 경합주만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11개주만 돌아다닌 롬니는 더했다. 비록 오랜 선거제도 탓에 오는 문제이긴 하지만 같은 세금을 내는 국민으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한마디로 오바마 집권 1기에 미국인들은 정치에 속고 자본에 털렸다. 그럼에도 과반의 미국인들은 오바마를 지지했다. 이들은 거악인 자본가의 앞잡이 롬니보다는 차악인 오바마를 선택했다는 데 위안 삼아야 할까. 큰손들의 도움으로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가 이를 바탕으로 무너진 중산층을 되살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진핑 중국 부주석 (출처; 경향DB)


시진핑의 중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지난 8일 개막한 18차 당 대회 정치보고에서 “2020년까지 1인당 국내총생산을 두 배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후 주석은 이를 ‘샤오캉(小康)사회의 전면 실현’으로 표현했다. 인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뿐 아니라 생활수준도 높이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중산층을 키우겠다는 약속이다. 후 주석의 후계자인 시진핑으로서는 이 약속을 이행해야 할 책무를 안고 있다. 5년 뒤면 중국인 6억5000만명이 중산층에 진입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으니 실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문제는 중산층이 커지면 이들의 목소리도 커진다는 점이다. 중산층을 키우면 키울수록 체제 안정을 위협하는 ‘중산층 딜레마’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중국 인민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이들의 요구를 적절히 통제하는 것이 시진핑에게 주어진 최고 과제이다.

 
<중산층은 응답하라>를 쓴 미국의 진보적 라디오 진행자 톰 하트만은 민주주의와 중산층은 DNA의 두 가닥 나선과 같다고 했다. 어느 하나가 파괴되면 다른 한쪽도 파괴되고 만다는 것이다.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가장 우려한 것은 경제 귀족이 지배하는 나라가 될 가능성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과도하게 부유해진 부자가 국가를 위협하지 못하게 제어하는 것이 국민의 권리이자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경제 귀족에 맞서 싸운 대통령이다. 그는 1936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재선을 위한 대통령 수락연설을 하면서 “국민 대다수는 힘들게 싸워 쟁취한 정치적 평등도 경제적 불평등 앞에서는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서 “평범한 국민은 정치에서 평등한 기회를 보장받는 만큼 시장에서도 평등한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적 자유 없이는 정치적 자유도 없다는 것이다. 흔히 오바마를 루스벨트 대통령에 비유한다. 대공황에 버금가는 금융위기 속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한 데서 비롯된다. 하지만 오바마가 진정한 루스벨트가 되려면 정치에 속고 자본에 털린 중산층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