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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아침을 열며

아침을열며12/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이집트 북동부 수에즈 운하 인근 도시인 이스마일리아. 지난 16일 한 무리의 주민들이 평화적인 거리시위를 벌이며 도로 한복판에 막아선 탱크들을 향해 행진한다. 이윽고 들리는 총성들, 그리고 주춤하는 시위대. 하지만 흰 모자를 쓴 한 남성은 두 팔을 하늘로 뻗은 채 꿋꿋하게 탱크들 쪽으로 걸어간다. 멈춰선 그는 탱크와 당당히 맞선다. 두 팔은 여전히 하늘을 향해 있다. 10초쯤 지났을까. 총성과 함께 그는 고꾸라진다. 총탄이 그의 복부를 관통한 것이다. 비록 그의 두부는 ‘소스라쳐 삼십보 상공으로 튀’어오르지는 않았지만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그를 ‘쓰러뜨렸다’. 그는 고통스러운 듯 도로 위에서 뒹굴었고, 주민 몇 명이 그를 향해 달려간다.


이집트 무르시 전 대통령 지지자 시위 도중 이집트군 총탄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 (연합)



지난 19일자 경향신문 1면에 실린 3장의 연속 사진은 충격을 넘어 끔찍했다. 이집트 첫 민선 대통령마저 지난달 3일 쿠데타로 쫓아낸 군부가 자행한 지난 14일의 최악의 유혈진압 이후 이 사건의 실체를 어떤 장문의 기사가 이 3장의 사진보다 더 잘 보여줄 수 있을까. 이 사진들은 ‘압둘라 슈샤’라는 이름으로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을 캡처한 것으로, “군이 이스마일리아에서 평화로운 시위대를 저격하고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궁금했다. 쓰러진 남성은 누구인지, 가족은 있는지, 죽었는지, 왜 물러서지 않고 탱크 쪽으로 갔는지…. 호기심에 유튜브 동영상과 관련 기사들을 살펴봤다. 아니, 할 수만 있다면 이 남성의 신원을 밝혀 원통한 넋이라도 달래주고 싶었다. 동영상 댓글에는 쓰러진 남성의 친구라고 소개한 이의 글이 있었다. “그는 내 친구다. 이름은 아흐메드 하킴이며, 아들과 딸이 있다.” 하지만 생사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당시 시위를 보도한 로이터통신은 4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또 다른 댓글은 그를 1989년 6월4일 중국 톈안먼 민주화운동 당시 진군하는 탱크 앞을 가로막던 청년에 비유하며 이렇게 썼다. “톈안먼 광장과 같았지만 이번엔 군인들이 그를 쐈다.”

중국 천안문 사태 시위진압 탱크를 저지하는 시민 (연합)


과거 군부독재 시절의 아픔을 되살린 이 동영상과 그 속의 주인공은 한 시인의 시와 한 저항가수의 노래를 떠올리게 했다. 김춘수의 ‘부다페스트에서 소녀의 죽음’과 정태춘의 ‘5·18’이다.

1956년 소련의 팽창정책으로 위성국가로 전락한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선 대규모 반소 민중봉기가 일어났다. 하지만 ‘쏘련제 탄환’ 앞에 모두 무릎을 꿇는, 비극으로 끝났다. 당시 진해 해군사관학교에서 강의를 하던 시인은 버스 안에서 이 사건을 다룬 외신 기사 한 토막을 읽고 소련의 압제와 그에 저항하는 헝가리 국민의 항거를 그린 시를 썼다고 한다. 그것이 “다뉴브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 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쏘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로 시작하는 ‘부다페스트에서 소녀의 죽음’이다. 학창 시절, 시에 나오는 ‘열 세 살 소녀’가 당시 희생된 특정 소녀라기보다 희생돼서는 안되는 젊은 생명이나 피지 못한 헝가리 민주화 등을 함축하고 있는 시어라고 배운 기억이 난다.

정태춘은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노래 ‘5·18’에서 이렇게 묻고 답한다.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깃발 없는 진압군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탱크들의 행진 소릴 들었소~.” 그리고는 선언했다.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다고. 그리고 잊지 말라고 절규했다. “~잊지 마라 잊지 마/ 꽃잎 같은 주검과 훈장/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이집트 군부의 최악의 유혈진압 이후 사흘 동안에만 약 800명이 총탄에 스러져갔다. 군부의 실세인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우리 군은 협박과 음모를 일삼는 배신자들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때문인지 반정부·반군부 시위는 소강상태에 빠졌다. 더욱이 군부는 민선 대통령을 축출하고 시위대를 학살한 데도 성이 차지 않는 듯, 2년6개월 전 국민들이 쫓아낸 30년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까지 석방했다. 다시 ‘장군들의 세상’을 부활시킬 태세인 것이다. 지금 이집트의 미래는 ‘시계제로’이다. 최악의 경우 과거 군사정권 시절로 되돌아가거나 피비린내 나는 내전에 휘말릴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스마일리아에서 쓰러진 남성은 총성에 주변의 동료들이 주춤할 때 앞으로 나가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설마 총을 쏘지는 않겠지’였을까, 아니면 ‘순교자가 돼도 좋다’였을까. 이집트 국민들의 꿈이 군홧발에 짓밟히거나 국제사회의 이해관계 속에 물거품이 될 때, 이집트 국민들과 전 세계인들은 이스마일리아에서 총탄에 맞아 스러져간 남성을 기억해야 한다. 아픈 과거를 잊지 않는 일, 이것이 김춘수와 정태춘이 그랬듯 살아남은 자들이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