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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아침을 열며

아침을열며10/미국 정보기관 수장들의 거짓말

지난 3월 미국 상원 청문회장. 민주당의 론 와이든 상원의원(오리건주)과 미 정보당국의 총책임자인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DNI)의 질의문답이 이어졌다.
“국가안보국(NSA)은 어떤 형태라도 미국인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지 않나요?”
“하지 않습니다.”
“하지 않는다고요?”
“의도적으로는 하지 않습니다.”

같은 달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장. 민주당 행크 존슨 하원의원(조지아주)은 키 알렉산더 NSA 국장을 5분여 동안 추궁했다.
“NSA는 미국 시민들의 e메일을 일상적으로 가로채고 있나요?”
“아닙니다.”
“NSA는 미국인들의 휴대전화 통화내용을 가로채나요?”
“아닙니다.”
“문자메시지는요?”
“아닙니다.”
“은행 거래 기록은요?”
“아닙니다.”

지난 6일 에드워드 스노든이 NSA가 미국인들을 불법적으로 감시하고 있다고 폭로한 이후 재조명받고 있는 2건의 의회 청문회 대화록을 요약한 것이다. 두 사람의 계속되는 ‘아니요’라는 대답은 미 정보기관 수장들이 의회는 물론 미국민들에게 거짓말을 일삼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NSA 알렉산더 국장의 사례는 그 극치라 하겠다. 그는 미국 국민들의 통화를 감시할 기술력을 가지고 있느냐는 존슨 의원의 집요한 질문에 14차례나 ‘아니다’라고 말한다. 집요하게 추궁하는 존슨 의원도 대단하지만 그때마다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아니요”라고 일관되게 답변하는 알렉산더 국장의 뻔뻔스러움에 말문이 막힌다. 그는 지난 12일 스노든의 폭로 이후 처음 의회 청문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NSA의 개인정보 수집 파문이 미 정가의 핵폭탄이 된 상황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당당했다. 상원 세출위원회의 패트릭 리히 의원(민주)이 “NSA 비밀 개인정보 수집 프로그램(프리즘)을 활용해 막아낸 테러 기도가 몇 건이냐고 물었다. 알렉산더 국장은 미국과 해외에서 “테러 수 십 건을 막았다”고 대답했다. 리히 의원이 정확한 숫자를 밝혀달라고 하자 “오늘은 숫자를 가지고 있지 않다. 다음주까지 알려주겠다”고 여유를 부렸다.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장(DNI) (AP연합)

미국 정보기관 수장들이 의원들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의원들은 왜 이들의 거짓말을 눈감아줄까. 바로 국가안보 때문이다. 정보 수장들에게 개인에 대한 감시는 국가안보를 위한 핵심 수단이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은 지난 9일 “이번 보도는 우리 정보 역량에 엄청난 타격”이라고 했다. 로버트 뮬러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12일 “기밀 폭로로 국가안보와 국민의 안전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같은 논리를 폈다. 의회 지도자들은 이번 파문 이후 민주·공화당 할 것 없이 스노든을 ‘반역자’로 낙인 찍는 데 바쁘다. 존 베이너 하원의장(공화)과 피터 킹 하원 정보위원장(공화),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 정보위원장(민주) 등이 대표 인사들이다. 힘깨나 쓰는 주류 언론의 칼럼니스트들은 간접적으로 거든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스노든이 고교에서 낙제하고 대학 진학에 실패한 패배자임을 강조했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내부고발자가 아닌 누설자라고 했다.

유력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이 ‘스노든 죽이기’에 앞장서는 것은 정보기관을 감시해야 할 의회와 언론의 기능이 국가안보라는 이름 아래 ‘빅 브러더’ 행세를 하려는 미 행정부 앞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내부 고발자의 행위를 매도함은 물론 사태의 본질을 호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스노든이 반역자인지, 누설자인지, 고교 낙제생인지 낙인찍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진짜 ‘빅 브러더’ 사회를 원하는 사람들이 쳐놓은 함정일 뿐이다. 9·11 테러 이후 미 정보기관들이 시민감시를 강화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애국법을 발의한 공화당의 짐 센슨브레너 하원의원조차 스노든 폭로 직후 미 법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NSA의 권력남용을 지적한 터다.

에드워드 스노든 전 CIA요원 (AP연합)

스노든이 처벌을 받으려면 그를 매도하기에 앞서 그가 이적행위를 했는지를 우선 규명해야 한다. 대중은 지난 3월 정보기관 수장들이 의회에서 왜 거짓진술을 했는지에 대한 해명을 궁금해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애국법을 남용한다고 맹공한 민주당 의원들이 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시민자유를 제약하는 것을 옹호하는지도 듣고 싶어한다. 스노든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폭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여러분부터 심지어 대통령까지 누구든 도청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는 우리 위치에서 결정할 내용이 아니다. 대중은 이 프로그램들과 정책들이 올바른지, 그른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스노든이 우리 앞에 던진 중요한 토론거리이자 이번 사건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