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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아침을 열며

아침을열며11/본말 전도된 스노든 사건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개인정보 불법 감시행위를 폭로한 지 한달 보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본말 전도’의 전형적인 사례를 또다시 목도하고 있다. 스노든 사건은 ‘개인자유 대 국가안보’라는, 오랜 논쟁거리에 대한 문제제기라 할 수 있다. 스노든이 폭로를 통해 강조하고자 한 본질은 국가안보를 위해 개인의 자유가 희생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스스로 내부고발자라는 가시밭길을 택했다. 하지만 그가 고발한 본질에 대한 논의는 실종된 지 이미 오래다. 그 자리는 스노든 송환과 정치적 망명을 둘러싼 미국과 반미 국가들의 줄다리기 같은 곁가지가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23일이면 스노든은 공항 환승구역에 갇혀 영화 <터미널>의 주인공처럼 웃지 못할 희극의 주인공 신세로 전락한 지 한달이 된다. 사건 초기 그의 폭로에 대한 관심과 그의 용기있는 행동에 대한 찬사는 어디로 간 걸까. 본질이 덮이고 곁가지가 그 자리를 차지할 때 과연 이득을 보는 이는 누구일까.

스노든 폭로 이후 전개되는 양상은 2010년 위키리크스 사건 때와 비슷하다. 미국은 우선 사건 연루자에게 도망자라는 올가미를 씌워 입지를 좁혔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일지와 국무부 외교전문을 공개한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는 영국 런던의 에콰도르 대사관에 발이 묶인 지 1년이 지났다. 어산지의 폭로는 ‘국가안보 대 알권리’라는 논란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스웨덴에서의 어산지 성폭행 연루 의혹이 불거지면서 사건의 본질은 가려졌다. 도망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달 23일 정치적 망명을 위해 홍콩을 떠나 모스크바 공항에 잠시 들른 스노든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미국 정부의 여권 말소 소식이었다. 여권이 없다면 스노든은 공항 환승구역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현실적으로 그가 살 수 있는 길은 정치적 망명뿐이다.

(경향DB)

이렇게 두 사람의 발을 묶어놓은 미국은 이제 ‘옳은 일을 했다면 떳떳하게 나서라’고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어산지는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벗어나는 순간 스웨덴으로 송환돼 재판에 처해진다. 그 뒤엔 간첩법으로 기소된 미국으로 신병이 넘겨져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스노든의 신세도 처량하긴 마찬가지다. 스노든은 지난 16일 러시아 이민국에 일시적인 망명을 신청했다. 운 좋게 받아들여진다면 스노든은 난민 증명서를 들고 자유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첫 관문부터 넘기가 쉽지 않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의 망명을 반대하고 있다. 정보기관을 둘러싼 논쟁보다 미국과의 관계가 러시아의 국익을 위해 더 중요하다는 논리를 앞세웠다. 그 뒤에 그를 받아줄 나라로 가는 길도 첩첩산중이다. 미국이 망명 승인 의사를 밝힌 국가들을 상대로 경제제재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카드로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범죄자 낙인 찍기도 여전하다. 가디언의 글렌 그린월드와 함께 스노든 폭로를 특종보도한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8일 ‘위키리크스-스노든-그린월드 음모론’을 암시하는 기사를 실었다. 셋이 짜고 한 ‘기획보도’라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하지만 그린월드가 사실을 왜곡한 기사라고 반박하자 ‘고침기사’를 내놓는 개망신을 당했다.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 (AP연합)

“개인에겐 준수해야 할 국가적 의무를 넘어서는 국제적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시민 개개인들은 평화와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를 막기 위해 국내법을 위반할 수 있다.” 1945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소가 2차 세계대전 전범들을 단죄하기 위해 천명한 원칙이다. 이 원칙은 그 뒤 많은 양심가들의 행동지침이 됐다. 내부고발자들도 이 원칙에 기반한 신념과 정의에 대한 믿음으로 기꺼이 자신의 운명을 내맡겼다. 스노든도 선구자들의 이 원칙을 충실히 따랐다. 하지만 이 원칙이 어떻게 왜곡되고 짓밟히고 있는지를 본말이 전도된 스노든 사건이 보여주고 있다. 때로는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국가의 폭력에 의해, 때로는 그것을 지켜야 할 구성원들의 무관심 때문에 말이다.

공항 환승구역에 갇혀 지내던 스노든은 지난 12일 잠깐 동안 세상과 다시 소통할 기회를 가졌다. 그때 그는 길지 않은 언론 발표문을 내놨다. “나는 내가 옳다고 믿었기에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이 캠페인을 시작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미국의 비밀을 팔아먹기 위해서도 아니다. 내 신변의 안전을 위해 어느 국가와도 손잡지 않았다. 대신 내가 아는 것을 대중에게 알려 밝은 빛 아래서 우리 전체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논의하는 길을 택했고, 세상에 정의를 요구했다. 이 같은 도덕적 결정은 치러야 할 대가가 크지만 옳은 일이기에 후회하지 않는다.” 평화와 자유, 정의 같은 인류 보편적인 가치는 스노든의 용기있는 행동만으로는 지켜지지 않는다. 그의 용기가 꺾이지 않게 하는 것은 남은 자들의 몫이다. 그것은 스노든의 처지와 그렇게 만든 현실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다. 그렇게 해도 본말이 전도되는 현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