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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경향의 눈

[경향의 눈7]존 삼촌과 트럼프의 핵 집착증(171026) 

대통령이 되기 전 도널드 트럼프가 핵 관련 언급을 할 때 자주 입에 올린 이가 있었다. 존 삼촌이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 두 달쯤 뒤인 2015년 8월 말, 보스턴글로브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삼촌은 내게 핵 이전의 핵에 대해 얘기해주곤 했다.” 2016년 3월 CNN 인터뷰에서 “핵확산에 찬성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아니다. 난 다른 어떤 것보다 핵무기를 싫어한다. 내 삼촌이 그 문제에 대해 얘기해주곤 했다.”

트럼프 삼촌 존(1985년 사망)은 유명한 공학자이자 핵물리학자였다. 40년 가까이 MIT 교수를 지냈다. 부동산 개발업자로 성공한 트럼프에게 삼촌은 특별했다. 똑똑함의 상징이자 가문의 자랑이었다. 삼촌의 피가 자신에게도 흐르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존은 핵무기 개발이나 핵정책에 참여한 경험이 없다. X레이 연구로 암환자의 생명을 연장하거나, 2차 세계대전 당시 레이더 연구에 관여했을 뿐이다. 트럼프가 핵을 언급할 때마다 삼촌 이름을 들먹이는 이유는 뭘까. 자신이 핵 전문가라는 걸 과시하기 위함일 터이다. 트럼프가 삼촌으로부터 핵 관련 지식을 얼마나 배웠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핵 사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은 분명한 것 같다.

트럼프가 삼촌으로부터 핵무기나 핵전쟁에 관한 얘기를 처음 들은 때는 1969년 무렵이다. 당시 트럼프는 23살이었다. 1984년 4월8일자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시리아에 있는 미친놈이 핵무기로 세상을 끝낼 수 있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라며 ‘핵 홀로코스트’를 언급한 사실을 전했다. 그런 생각을 갑자기 떠올린 게 아니라고 했다. 삼촌이 약 15년 전 그것에 대해 얘기해줬다고 했다. 동시에 미국 협상 대표가 된다면 소련과의 핵무기 감축협정을 맺을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거래의 달인답게 군축협상을 부동산 거래에 비유한 것이다. 7개월 뒤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런 뜻을 재차 밝혔다.

말로만 끝나지 않았다. 1986년 트럼프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를 만난 적이 있는 버나드 로운 박사를 만나 그에 대한 정보를 달라고 했다. 로운 박사는 트럼프를 20분간 만나 고르바초프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줬다. 트럼프는 이듬해 7월 소련을 방문해 고르바초프를 만났다. 하지만 목적은 핵협상과 거리가 멀었다. 모스크바에 고급 호텔을 짓는 것에 대한 의향 타진이었다.

핵협상 특사가 되겠다는 발상이나 감축협상을 쉬운 일로 여기는 태도는 트럼프가 이 문제에 무지하다는 걸 보여줄 뿐이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핵집착은 이어졌다. 1990년 플레이보이 인터뷰에서 그는 “핵전쟁에 대해 항상 생각하는데, 내 사고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라고 말했다. 1995년 MSNBC 인터뷰에서는 향후 5년간 핵전쟁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5년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부터는 핵무기 현대화나 핵무기 사용과 핵확산에 대한 다양한 말을 쏟아냈다. 심지어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까지 제안했다.

트럼프의 오락가락 발언들을 보면 그가 핵 전문가는커녕 핵공포에 사로잡혀온 사실을 알 수 있다. 언론인 데이비드 콘은 “트럼프는 수십년간 핵전쟁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감정에 사로잡혀온 것 같다. 지금은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입장에 있다”고 말했다. 제임스 클래퍼 전 국가정보국장은 “불쾌감으로 김정은에 대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결정한다면 그를 막을 방법은 없다”면서 “이것이 빌어먹을 소름끼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은 지난 4월 폭스뉴스에 출연해 북한 지도자에게 핵무기는 공격용이 아닌 방어용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에 대해서도 “무자비하고 무모하지만 미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정은에게 핵무기는 정권 유지와 미국 공격 방어 수단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화염과 분노’ ‘북한 완전 파괴’ 발언으로 핵전쟁 공포를 부추겼다. 심지어 미국에서만 아니면 핵전쟁이 나도 괜찮다는 식의 말까지 했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조차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은 “인도주의적 재앙”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미치광이가 아니라면 어떻게 민주국가 지도자가 핵전쟁이라는 말을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있을까. 설사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할지라도 핵전쟁을 부추기는 발언은 해서는 안된다.

트럼프가 핵 전문가임을 떳떳하게 내세우려면 ‘억지’나 ‘봉쇄’ ‘상호확증파괴(MAD)’ 같은 핵 관련 기초지식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아니라면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의 말처럼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낫다. 10여일 뒤 트럼프가 방한한다.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