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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 멈춰선 9·19 평양선언, 할 수 있는 것부터 평화의 길 뚫자(200919)

9·19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합의서가 나온 지 19일로 2주년을 맞는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그날의 흥분과 설렘은 잦아든 지 오래다. 지난 6월 대북전단 살포로 촉발된 긴장 고조로 남북관계는 얼어붙어 있다. 지난해와 달리 정부 주도 행사도 없고, 공식 입장조차 낼 수 없는 게 현주소다. 정부는 평양선언 2주년을 멈춰선 남북관계를 되살리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평양선언과 군사합의서는 한반도 평화의 이정표가 된 소중한 자산임은 분명하다. 평양선언에는 4·27 판문점선언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구체적 이행 방안이 제시됐다. 북측의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 폐기 등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는 조치와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정상화, 연내 철도·도로 연결 착공,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같은 남북협력 방안도 포함됐다. 실질적인 진전을 이룬 것은 군사합의서였다. 비무장지대 감시초소 철수가 실행됐고, 육해공에서 모든 적대행위를 중단키로 했다. 군사합의서가 남북 간 우발적 무력충돌을 최소화하고, 불가침을 선언하는 ‘안전판’ 역할을 한 것이다. 하지만 개성연락사무소가 폭파되고 북한군의 전방 요충지 재배치 얘기까지 나온 ‘6월 위기’는 이조차 언제든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정부는 6월 위기 이후 관계 복원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코로나19 방역·수해 협력과 이산가족 상봉·남북 철도 연결 제안, 한·미 연합훈련 연기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묵묵부답과 단호한 거부였다. 북측의 이 같은 태도는 내부 사정과 북·미관계에서 비롯되지만, 지난해 하노이 회담 결렬 후 중재자 역할을 기대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불만과 실망도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남북 모두 대승적이고 전형적인 태도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문 대통령은 18일 “만남과 대화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남북의 시계를 2년 전으로 되돌려야 한다”며 남북협력 재개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남북관계 개선은 남측 의지로만 되지 않고 손뼉을 마주쳐야 할 수 있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실질적인 조치가 따라야 한다. 대북전단방지법의 조속한 처리 같은 남북 간 준수사항을 이행하는 게 우선이다. 인도적 교류·협력 방안도 계속 주고받고, 작은 것부터 하나씩 길이 뚫리길 바란다. 문 대통령은 오는 23일 화상으로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한다. 미국과 협의하며 남북만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시하길 바란다. 북측도 남측과의 대화에 적극 호응해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가는 동반자로 돌아오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