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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 북한 납치 문제 언급하면서 한국만 쏙 뺀 스가(200918)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지난 16일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한국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스가 총리는 이날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이 가장 중요한 정권의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미·일 동맹을 주축으로 삼겠다”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가까운 여러 나라와 안정적인 관계를 맺고 싶다”고 했다. 주변국과의 관계 안정화를 강조하면서 한국만 쏙 뺀 것이다. 새 총리 취임을 계기로 한·일관계 개선에 일말의 기대감을 가졌던 우리로서는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꽉 막힌 한·일관계가 당분간 개선될 여지가 없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스가 총리의 ‘한국 패싱’은 충분히 예견됐다. 그는 취임 전부터 외교정책의 계속성을 강조하며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책 노선을 계승하겠다고 밝혀왔다. 특히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인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해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는 아베 정권의 입장을 지지했다. 향후 외교정책에서 아베 전 총리의 조언을 구하겠다고까지 했다. 이날 발표된 스가 내각도 각료 20명 중 11명이 아베 정권 인물들로 채워졌다. 첫 기자회견은 자신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보여준 자리였다. 일각에서는 그가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관계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언급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스가 총리는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 같은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아베의 계승자’를 자처한 그의 한계를 보여준 셈이다. 동시에 스가 총리가 아베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한·일관계 회복이 쉽지 않다는 점을 재확인시켜줬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축하서한에서 “스가 총리의 재임 기간 중 한·일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자”며 대화를 제안했다. 대화만이 해법임을 다시 강조하며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스가 총리의 호응을 기대한다. 연말 한국에서 개최연말 한국에서 개최될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담이 양국 관계를 개선할 계기가 될 수 있다. 스가 총리의 취임이 두 나라 관계개선의 실마리가 되길 기대하는 것은 한·일 국민의 공통된 바람일 것이다. 전임 총리 아베보다 실용적인 면모를 지닌 스가 총리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전향적인 자세를 가진다면 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진정한 한·일관계 개선은 일본의 책임 있는 자세가 바탕이 돼야 함은 물론이다. 한국 정부 또한 대화 제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