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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 서해 피격 남 탓한 북, 몰인권적 행태 접고 남북 소통 응해야(201031)

북한이 30일 지난달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자기 측 주민을 제대로 관리·통제하지 못하여 일어난 사건”이라며 “남측에 우선적인 책임이 있다”고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주장했다. 통신은 “(민간인 피격은) 정상 근무를 수행하는 군인들의 대응”이라며 복무수칙에 따른 정당한 조치임을 강조했다. 이번 통신 보도는 사건 발생 후 북측이 내놨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측의 공동조사 요구는 거부한 채 민간인 사살 책임을 전가하는 행태는 적반하장이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사건 발생 사흘 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밝힌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케 할 뿐, 남북관계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직시해야 한다.

통신 보도는 지난달 25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 명의의 통지문 이후 북측이 이 사건에 대해 표명한 두 번째 입장이다. 당시 북측은 이 사건을 불법 침입에 대한 정당한 행위임을 주장하며 오히려 ‘만행’이니 ‘응분의 대가’ 같은 남측의 비판에 유감을 표명했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은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사건 발생 40일이 다 돼가지만 핵심 쟁점인 ‘시신 훼손’을 둘러싼 진실 규명 요구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인 사살 책임을 남측에 전가하는 것은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통신은 “‘시신 훼손’이라는 것도 남조선 군부에 의해 이미 진실이 드러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방부의 공식 입장은 북한이 시신을 부유물과 함께 불태웠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북측 발언은 시신 훼손에 대한 실체적 진실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이 문제를 미제화하거나, 남한 내 갈등을 유발하려는 대남공세 성격도 있어 보인다.

 

민간인 사살은 비인도적인 행위로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북한이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월경자를 사살하라는 조치를 내린 것은 심각한 국제인권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남조선 보수패당의 분별없는 대결 망동이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면서 청와대나 정부 당국이 아닌 보수 세력을 표적으로 경고했다. 이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북측은 민간인 피격과 시신 훼손 문제에 대해 정파를 떠난 남측 주민들의 분노를 먼저 헤아릴 필요가 있다.

 

북측은 남 탓하기를 당장 중단하고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한 책임 있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 그 첫걸음이 시신 수습을 위한 남북 공동조사에 응하는 일이다. 여의치 않다면 지난 6월 대북전단 배포를 이유로 중단된 남북 간 연락채널을 복구해 소통하자는 남측 요구에라도 우선 화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