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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여적

[여적] 부고로 채운 1면(200525)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21일자 경향신문 1면 제목이다. 그러나 기사는 없다. 그 자리에는 뒤집어진 안전모 그래픽과 무수한 이름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름 뒤에는 ‘떨어짐, 끼임, 깔림·뒤집힘, 부딪힘, 물체에 맞음’ 같은 간단한 설명이 붙어 있다. 산업재해 현장에서 주요 5대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들이다. 2018년 1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1748명이 그렇게 스러졌다. 이날 지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 국가이지만 노동자의 죽음에 무감각한 한국 사회에 큰 경종을 울렸다. 코로나19 사태는 신문 편집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 사망자가 잇따르면서 부고면이 평소보다 크게 늘어났다. 이탈리아에서 ‘죽음의 도시’로 불린 북부 베르가모의 지역.. 더보기
[여적] 폼페이오의 갑질(200520)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약자에게 부당한 행위를 강요하는 ‘갑질’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박찬주 전 육군대장이다. 2군사령관 재직 시 부인의 ‘공관병 갑질’ 논란으로 그는 불명예 전역했다. 재판을 통해 직권남용 혐의는 벗었지만 다른 비위가 드러났다. 뇌물 수수는 무죄가 선고됐지만, 부정청탁은 벌금형이 선고됐다. 이로 인해 박 전 사령관은 군인으로서 씻기 어려운 불명예를 안았다. 지난 총선에서 여론에 밀린 제1야당이 그의 영입을 포기해 정계 진출도 좌절됐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폼페이오 부부가 보좌관에게 애완견 산책, 세탁물 찾아오기, 식당 예약 등 개인 심부름을 시켰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국무부 감찰관을 해임했는데, 그 이유 .. 더보기
[여적] 소신의 파우치 박사(200516)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상원에서 코로나19 관련 청문회가 열렸다. 주제는 ‘안전하게 직장과 학교로 돌아가기’였다. ‘경제 정상화 재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현안이다. 자가 격리 탓에 화상으로 참석한 한 증인이 말했다. “각 주나 도시들이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 없이 서둘러 문을 연다면 발병 사례가 급증할 것이다.” 트럼프의 경제 정상화 재개는 시기상조라고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이 소신 발언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 멤버인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80)이다. 파우치는 앞서 트럼프가 부활절(4월12일)을 경제 정상화 시점으로 고려할 때 포기시킨 적이 있다. 데이터로 트럼프를 설득한 덕분이었다. 반면 트럼프의 늑장 대응을 비판했다.. 더보기
[여적] 보팔 사고(200511)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정체불명의 흰 가스가 도시를 덮쳤다. 눈이 타들어가고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도시를 벗어나려는 안간힘도 소용이 없었다. 거리에는 이내 독가스에 중독돼 토하고 쓰러진 사람들의 시신이 넘쳤다. 단 몇 시간 동안의 가스 누출로 최소 3700명에서 최대 2만명이 숨졌다. 50여만명은 극심한 고통과 후유증을 겪었다. 1984년 12월3일 새벽 인도 중부 보팔에 있는 미국 다국적기업 유니언카바이드의 살충제 공장에서 일어난 가스 누출 사고다. 세계 최악의 산업 재해로 불리는 ‘보팔 참사’의 정확한 사상자 수와 참사 원인은 아직도 논쟁 중이다. 보팔 참사는 안전 불감증이 부른 대표적인 인재였다. 미국 공장보다 못한 안전기준, 제대로 안 이뤄진 시설 유지 및 보수, 미흡한 경보체계의 합작품이었다. .. 더보기
[여적] '약장수' 트럼프(200427) "살균제를 몸 안에 주사하거나, 폐에 들어가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브리핑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 말이다. 표백제 같은 살균제가 표면이나 공기 중 코로나바이러스19를 죽였다는 국토안보부 국장의 연구 결과 발표 후 나왔다. 살균제가 코로나19 치료제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담당 국장은 살균제를 인체에 주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트럼프는 “어쩌면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이른바 트럼프의 ‘살균제 치료법’ 소동은 다음날 그가 농담이라고 했음에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트럼프를 “돌팔이 약장수’(a quack medicine salesman)”라고 .. 더보기
[여적] 슬픈 동물원(200418) 1870년 마지막 날 오후. 프랑스 유명 작가 에드몽 공쿠르는 파리 시내 한 푸줏간에서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어린 코끼리의 몸통과 심장, 낙타의 콩팥 등이 고기로 팔리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공쿠르는 코끼리 이름까지 알고 있었다. 파리 시민이면 누구나 다 아는 파리동물원의 ‘폴릭스(Pollux)’였다. 독·불전쟁이 한창이던 파리는 3개월째 봉쇄 상태였다. 식량과 연료 등 생필품난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고양이와 쥐가 주식이 된 지 오래였다. 공쿠르는 “모두가 뭘 먹을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며 한 치 앞도 모르는 당시의 참담한 상황을 전했다. 도살된 코끼리 폴릭스 스토리는 전쟁이 낳은 슬픈 동물원의 한 장면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은 또 다른 동물의 비극을 연출하고 있다. 동물원 동.. 더보기
[여적] 빌 게이츠의 꿈(200414)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65)의 인생은 미국 법무부가 그를 상대로 제기한 반독점법 소송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세계 최고 부자’에서 ‘최고 자선사업가’로 거듭났다. 소송이 한창이던 2000년 부인과 함께 자선단체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만들었다. 당시 재산의 71%인 203억달러를 재단에 기부했다. 이후 그는 재단을 통해 에이즈와 소아마비 같은 감염병 퇴치, 후진국 경제 개발, 기후변화 해결에 헌신해왔다. 그가 2008년 MS 최고경영자, 2014년 이사회 의장에 이어 지난달 이사마저 그만둘 것이라고 한 이유는 “국제 보건과 개발, 교육, 기후변화 대응 같은 자선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위해서”였다. 빌 게이츠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넷플릭스.. 더보기
[여적] 샌더스의 도전(200410)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대선후보에 도전장을 던질 때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외친 것은 ‘백악관 입성’이 아니었다. ‘정치혁명’이었다. 샌더스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두 가지를 역설했다. 첫째는 진보 의제의 실현이었다. 전 국민 건강보험과 대학 무상교육, 시간당 최저임금 15달러와 같은 일찍이 미국인들이 보지 못한 공약을 내걸었다. 다음은 풀뿌리 정치인을 길러내는 일이었다. 비록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패함으로써 실험에 그쳤지만 샌더스의 외침은 이민자, 여성, 노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도 자신이 내세운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정치단체 ‘우리 혁명’을 만들었다. 젊은 유권자들을 교육해 각종 선거에서 진보 후보를 당선시키는 게 목표였다. 수많은 미국인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 더보기
[여적] 김칫국 마시기(200404)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속담이 있다. 상대방은 줄 생각도 하지 않는데 지레 받을 준비를 한다는 의미다.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눈치 없이 하는 행동을 비꼴 때 자주 쓴다. 떡 줄 사람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재미있는 건 같은 뜻으로 쓰이는 ‘떡방아 소리 듣고 김칫국 찾는다’, ‘앞집 떡 치는 소리 듣고 김칫국부터 마신다’처럼 김칫국이 주로 떡과 함께 활용된다는 사실이다. 예로부터 떡과 김칫국은 찰떡궁합으로 여겨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우리 조상들은 떡을 먹을 때 늘 김칫국과 함께 먹었다고 한다. 본뜻은 체하지 않게 조심하라는 것이라고 한다. 일상에서 김칫국부터 마시는 사례는 드물지 않게 본다. 대표적인 것이 정치판이다. 결과야 어떻든 일단 빈말이.. 더보기
[여적] 코로나 청정국?(200331) 코로나19를 막을 최고의 방책은 ‘고립’과 ‘격리’다. 전 세계가 물리적 거리 두기를 강조하는 이유다. 하지만 사람이 매개체이다 보니 확진자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지난해 12월31일 첫 환자가 보고된 이후 석 달 만인 30일 현재 코로나19 확진자는 72만명을 넘었다. 사망자도 3만4000명에 이른다. 실시간 코로나 자료를 제공하는 사이트 월도미터에 따르면 199개 나라와 지역, 2척의 크루즈선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 실제로 ‘고립’의 대명사로 통하는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제도마저 코로나 침투를 피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지구상에는 여전히 감염자가 한 명도 없는 ‘코로나 청정지역’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남극이다. 28개국이 과학기지를 운영 중이지만 엄격한 입국 통제 덕분에 확진자가 없다. 코로나19..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