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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여적

[여적] '외조의 왕' 필립(210412) 영국 역사에서 여왕은 6명뿐이다. 메리 1세(1516~1558)가 처음이고, 엘리자베스 1세·메리 2세·앤·빅토리아 여왕을 거쳐 현재의 엘리자베스 2세가 1952년부터 왕실을 이끌고 있다. 여왕 남편의 공식 칭호는 ‘The Prince Consort’다. 첫 여왕 메리 1세의 남편인 펠리페 2세는 스페인의 황금시대를 이끈 국왕으로 더 유명하다. 엘리자베스 1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여왕의 남편으로 부를 수 있는 첫 인물은 앨버트공이다. 대영제국 최전성기를 이끈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이다. 그는 미혼으로 즉위한 빅토리아 여왕과 결혼한 뒤 죽기 전까지 21년간 보필했다. 하지만 결혼 17년이 지나서야 여왕의 남편 칭호를 받을 정도로 푸대접을 받았다. 세계 최장수 군주인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 필립공이 10.. 더보기
[여적] 아파트 택배 대란(210409) 한국인 삶에서 아파트와 택배는 필요불가결한 요소다. 전국 총 주택 가운데 아파트의 비율은 62%다. 지난해 택배 물량은 34억개로, 1인당 65개꼴이다. 전년에 비해 21%나 증가했다.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이 가장 큰 원인이다. 갈수록 아파트도, 택배 물량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결합해 새로운 사회 문제를 낳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바로 아파트 택배 대란이다. 2018년 봄 경기 남양주시 다산신도시에서 본격적으로 불거진 택배 대란이 최근 재현됐다. 5000가구 규모의 서울 아파트 단지가 이달 초 택배 차량의 출입을 금지했다. 손수레로 각 가구까지 배송하거나 지하주차장에 출입할 수 있는 저상차량을 이용하라고 택배기사들에게 통보한 것이다. 택배노조는 이에 반발해 아파트.. 더보기
[여적] 'SNS 시민군' 깃발 든 반크(210403) 시민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해 해결한 사건이 있다. 2015년 초 발생한 ‘크림빵 아빠 뺑소니 사건’이다. 임신한 아내를 위해 크림빵을 사들고 한밤중에 귀가하던 남편이 무단횡단하다 뺑소니 차량에 치여 사망했다. 유일한 단서인 현장 폐쇄회로(CC)TV는 화질이 좋지 않아 수사는 난항에 빠지지만 사고자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자 SNS는 바로 들끓었다. 누리꾼들이 ‘SNS 수사대’를 꾸려 CCTV 동영상을 추적하고 여론을 조성한 것이다. 결국 추적이 겁난 범인은 사건 발생 19일 만에 자수한다. ‘SNS 수사대’가 미궁에 빠졌을지도 모를 뺑소니 사건을 해결한 셈이다. SNS는 민주화 시위의 도화선도 됐다.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쓴 ‘아랍의 봄’ 시위가 대표적이다. SNS가 독재정.. 더보기
[여적] 라면왕(210329) 한국인이 일주일에 평균 1개 이상 먹고, ‘제2의 쌀’로 불리며, 많은 이들이 생애 첫 요리로 꼽는 음식은? 라면이다. 국내에 즉석라면(봉지면)이 도입된 지 58년이 됐다. 1963년 9월15일 선보인 삼양라면이 효시다. 초기엔 팔리지 않아 무료 시식과 사병 급식으로 내놓다가 도시화·산업화 붐을 타고 소비가 급증했다. 원조국 일본보다 5년 늦게 첫발을 뗐지만, 지금은 일본을 포함한 100여개국에 수출돼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한국인의 라면 사랑은 유별나다. 지난해 세계라면협회(WINA)가 내놓은 1인당 소비량은 연간 75.1개로, 단연 세계 1위다. 짜장면과 우동, 비빔국수 등 먹고 싶어 하는 모든 면이 라면으로 탄생했다. 라면 활용법도 다양해졌다. 김치찌개와 부대찌개는 라면이 들어가야 제격이다.. 더보기
[여적] ‘돼지 같다’는 비유(210320) 2008년 미국 대선 두 달 전, 난데없이 ‘돼지 립스틱’ 논란이 벌어졌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돼지 입술에 립스틱을 발라도 돼지는 돼지”라고 한 말이 발단이었다. 공화당은 첫 여성 부통령 후보 세라 페일린을 겨냥한 성차별적 비방이라며 발끈했다. 페일린은 며칠 전 수락연설에서 자신을 자식 뒷바라지에 여념 없는 하키맘에 비유하며 “하키맘과 투견의 차이는 립스틱을 발랐다는 것”이라고 했다. 오바마는 공화당 후보 존 매케인이 강조하는 ‘변화’가 소용없다는 의미로 사용했다며 사과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매케인도 한 해 전 민주당 경선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의 건강보험 계획을 비판하면서 똑같은 비유를 했기 때문이다. 미 정가에서 자주 쓰이는 ‘돼지 입술에 립스틱’이라는 표현은 .. 더보기
[여적] 샤를리 에브도의 '도발'(210315) 정치만평의 생명은 풍자다. 그래서 만평 속 정치인은 사실과 달리 우스꽝스럽게 묘사되거나 과장되기 일쑤다. 한 컷의 만평엔 촌철살인하는 신랄한 비판이 담겨 있어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반대로 논란을 불러 지면(온라인)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2019년 4월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다룬 뉴욕타임스의 정치만평이 그랬다. 트럼프를 유대인 모자 야물크를 쓴 ‘맹인’에, 네타냐후 총리를 안내견에 빗댄 내용이었다. 반유대적이라는 항의가 쏟아지자 그해 7월1일자부터 정치만평을 없앴다. 프랑스의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는 이슬람 창시자인 무함마드 조롱 만평으로 유명하다. 무슬림은 무함마드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걸 신성모독으로 여기며 금기시한다. 그럼에도 2006년 2.. 더보기
[여적] 룰라의 귀환(210310) ‘좌파의 아이콘, 노동자의 대통령,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 그리고 부패한 정치인.’ 그의 이름 뒤에는 많은 수식어가 따른다. 21세기 첫 10년을 지배한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76)의 이력에는 질곡의 브라질 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가난이 구두닦이 룰라를 노조활동에 눈뜨게 했고, 노조지도자가 되어서 군부독재에 맞선 경험은 그를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했다. 3전4기 끝에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보우사 파밀리아’ 같은 빈곤층 보호정책을 대대적으로 펼쳐 세계적인 정치인으로 도약했다. 퇴임 직전 지지율 87%만큼 그의 8년 집권을 잘 보여주는 척도는 없을 터이다. 그런 그가 퇴임 8년 뒤 감방에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룰라의 발목을 잡은 것은 부패였다. ‘세차작전.. 더보기
[여적] 미국발 코로나 부유세(210303) 세계적인 부자 워런 버핏은 대표적인 부자증세론자다. 그가 2011년 8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소득세율이 비서보다도 더 낮다”며 부자증세를 요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2010년 그가 낸 소득세는 약 694만달러였지만 소득세율(17.4%)은 직원 20명의 평균(36%)보다 크게 낮았다. 그보다 70년 전 미국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제안으로 2만5000달러가 넘는 부분에 90%가 넘는 소득세를 부과하기도 했다. 부유세는 부자증세와 결이 다르다. 부과 대상이 이른바 슈퍼부자이며, 기준은 소득이 아닌 순자산이다. 미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과 버니 샌더스는 대표적인 부유세 옹호론자다. 두 사람은 지난해 대선의 민주당 경선 후보로 나서며 서로 경쟁하듯 부유세안을 내놨다. 워런안은 5000만~10억달.. 더보기
[여적] 밀크티 동맹(210302) 19세기 영국과 청나라 간 아편전쟁의 도화선이 된 것은 차(茶)였다. 당시 영국에서는 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청으로부터 차를 사들일 결제대금 은이 절대 부족했다. 그래서 영국이 고안한 것이 인도를 끼워넣은 ‘삼각무역’이었다. 대중국 무역 독점권을 가진 동인도회사가 영국의 모직물을 인도에 수출하면, 인도는 중국에 아편을 수출하고, 그 대가로 영국이 차를 가져오는 식이다. ‘차의 정치경제학’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차가 다시 국제정치의 중심에 섰다. 태국과 중국 간 소셜미디어(SNS) 전쟁이 계기였다. 태국의 한 유명인이 트위터에 홍콩을 국가로 묘사한 이미지를 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중국 누리꾼들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무시한 처사라며 강력 반발했다. 급기야 두 나라 간 갈등에 .. 더보기
[여적] K주사기의 힘(210301) 의약품을 인체에 주입할 때 사용하는 의료기기가 주사기다. 몸통과 피스톤(밀대), 주삿바늘로 구성되지만 그 속에 놀라운 과학이 숨어 있다. 주사를 하더라도 피스톤과 주삿바늘 사이에 미량의 약물이 남을 수밖에 없다. 흔히 죽은 공간(Dead Space)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이 죽은 공간을 획기적으로 없앨 수 있다면 버리는 주사액이 줄고 접종 횟수를 늘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최소잔여형(Low Dead Space·LDS) 주사기다. LDS 주사기는 그동안 투약 비용이 비싼 불임치료나 암치료에 주로 사용됐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면서 한국에서 만든 이 주사기가 또 다른 ‘게임 체인저’로 떠올랐다. 국내에서 접종 중인 화이자 및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1병당 접종 권고 인원이 각각 6명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