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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

[여적] ‘경(京)’원의 시대(220115) 머릿속에서나 존재할 뿐 일상생활 속에서 결코 볼 수 없을 것 같은 거액이 있다. 1경(京)원이 그렇다. 1조원보다 1만배나 큰 액수다. 0의 개수만 16개나 된다. 1조원이야 세계적인 부자의 기준(억만장자)이니 알 수 있지만 1경원은 도무지 와닿지 않는다. 월급쟁이가 평생 일을 해서 벌 수 있는 돈이 많아야 수십억원이니 당연하다. 시야를 넓혀도 마찬가지다. 올해 예산 608조원, 지난해 가계부채 1806조원, 지난해 국내총생산(GDP·국제통화기금 기준) 1조8239억달러(약 2163조8750억원)도 이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국내 통계로는 2020년 말 기준 1경7700조원인 국민순자산에서 겨우 만날 수 있을 정도다. 개인적으로 접해본 가장 큰 액수는 535조달러(약 63경4670조원)다. 2017년 기.. 더보기
[경향의 눈29] 적은 문 앞까지 왔건만(220113) 약 10년 전 ‘오바마의 짐 갈라진 미국’이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정치적 양극화 현상이 조지 W 부시 행정부보다 버락 오바마 때 더 두드러졌다는 내용이었다. 이전보다 더 보수화한 공화당 지지자들이 원인이었다. 갈수록 그 추세는 심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임기말 국정지지도에 대한 양당 지지자 간 격차는 85%포인트였다. 역대 최대다. 오바마 임기말 때보다도 10%포인트 가까이 높다. 조 바이든은 사상 최악의 갈라진 미국이라는 짐을 안고 출발했다. 그의 당선 첫 일성이 사회 양극화 해소인 것은 당연하다. 지금은 어떨까. 새해 벽두 공개된 워싱턴포스트·메릴랜드대 여론조사 결과는 암울하다. 트럼프 지지자 69%는 아직도 바이든이 정당하게 선출되지 않았다고 여긴다. 초유의 대선 불복과 그에 따른 1·6.. 더보기
[여적] 투투 대주교의 진실화해위(211228) “이제라도 용기를 내어 진실을 고백한다면 오히려 용서와 화해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에서 한 말이다. 문 대통령 메시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실화해위원회의 정신을 빌려온 것이다. ‘가해자의 진실 고백-용서-화해’ 과정은 남아공 진실화해위가 추진한 ‘보복 없는 과거사 청산’의 전형이다. 40년이 지나도록 규명되지 않는 5·18 발포 명령자와 계엄군이 자행한 숨겨진 민간인 학살 등을 찾기 위해서는 처벌 그 자체보다 고백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1994년 오랜 투옥과 투쟁 끝에 남아공의 첫 흑인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 청산과 사회통합을 위한 첫 작업으로 진실화해위를 만든다. 이 위원회는 과거사 청산의 새로운 모델.. 더보기
[여적] 핑크 타이드(211222) 중남미는 ‘미국의 뒷마당’으로 불린다. 200년 전인 1823년 12월 제임스 먼로 미 대통령이 천명한 ‘먼로 독트린’이 그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유럽 식민주의자로부터 미주 대륙을 보호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지만 미국의 중남미 개입을 정당화하는 명분이 됐다. 냉전 시절 좌파 정부가 잇따라 등장하자 미국은 그때마다 쿠데타로 정권교체에 나섰다. 한 분석에 따르면 1945년 이후 미국이 시도한 정권교체 횟수는 68번이나 된다. 코스타리카를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을 등에 업은 독재자를 경험했다고 한다. 냉전 종식 이후에도 미 주도의 신자유주의 입김이 중남미를 지배했다. 중남미 정치 지형이 바뀌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말이다. 1999년 베네수엘라, 2003년 브라질, 2006년 볼리비아에 좌파 정부가 잇따.. 더보기
[경향의 눈28] 아마존의 노조 실험은 끝나지 않았다(211216) 2021년은 미국 노동운동사의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세계적인 기업 아마존과 스타벅스 미국 내 사업장에서 첫 노조가 탄생할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노조가 생기면 설립 이후 이어진 아마존(1994년)과 스타벅스(1971년)의 미국 내 매장 무노조 경영은 끝난다. 첫발은 미 노동관계위원회(노동위)가 뗐다. 노동위는 지난달 29일 지난 2~3월 앨라배마주 베서머 물류센터 직원들이 실시한 노조 설립 찬반 투표 결과(반대 71% 찬성 29%로 부결됐다)를 뒤집고 재투표를 결정했다. 노동위가 산별노조 측이 제기한 청원을 받아들임으로써 아마존 첫 노조 설립은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됐다. 열흘 뒤엔 스타벅스에서 희소식이 나왔다. 지난 9일 공개된 뉴욕주 버펄로의 한 스타벅스 매장 직원들의 노조 결성 투표 결과 찬성 .. 더보기
[여적] 중국의 해외 기지(211207) 미국은 ‘기지 국가’다. 전 세계 국가가 해외에 설치한 군사기지의 약 95%가 미군 기지다. 미 공식 자료에 따르면 2016년 9월 현재 미군의 해외 기지는 45개국 514곳에 이른다. 2015년 를 쓴 데이비드 바인은 공식적으로 잡히지 않는 것까지 포함하면 70여개국 800곳 정도로 추산했다. 지금은 81개국 등지 약 750곳으로 추정한다.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는 미국의 해외 기지 중 가장 규모가 크다. 반면 중국은 아프리카 동부 지부티 한 곳에 해외 기지를 두고 있다. 그것도 2017년 8월부터 운용 중이다. 프랑스와 러시아, 영국이 10~20곳을 운용 중인 것에 비교해도 적다. 지부티에 1호 기지를 둔 이유는 이곳이 수에즈 운하로 가는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미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도 .. 더보기
[여적] 경항모가 뭐길래(211204) 607조7000억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이 법정시한을 하루 넘기고 3일 국회에서 처리됐다. 법정시한 내 처리의 발목을 잡은 예산안 가운데 하나가 72억원의 경항공모함(경항모) 사업이었다. 당초 지난달 16일 국회 국방위에서 5억원으로 대폭 삭감돼 사업 착수가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막판에 원상회복됐다. 경항모 도입은 해군의 숙원이다. 1990년대 중반 처음 제기된 뒤 2019년 국방중기계획에서 공식화됐다. 2033년까지 대략 길이 265m·폭 43m, 3만t급 항모를 건조하는 것이 핵심이다. 경항모는 ‘움직이는 영토’로 불리는 항공모함 중 규모가 가장 작다. 항모는 크기(t수)에 따라 대형항모(9만~10만t), 중형항모(4만~7만t), 경항모(1만~3만t)로 분류한다. 대형항모는 천문학적인.. 더보기
[여적] 사과의 요건(211129) 역대 대통령 중 박근혜만큼 사과로 물의를 일으킨 이는 없다. 무엇보다 ‘대리(대독)’ 사과로 유명했다. 2013년 취임 후 김용준 총리 후보자 등 장차관급 6명이 도덕적 결격 사유로 무더기 낙마했다. 그때 사과문은 허태열 비서실장 명의였고, 김행 대변인이 대신 읽었다. 그해 5월 미국 방문 중 일어난 ‘윤창중 성추행 의혹 사태’ 때는 이남기 홍보수석이 대독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는 삼성서울병원장이 먼저 대리 사과를 했다. 2016년 말 최순실 의혹이 터졌을 때는 ‘녹화’ 사과로 분노를 자아냈다. 정치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과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사과인지, 아닌지 알쏭달쏭할 때가 많다. 사과하는 모양새만 드러내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속성 탓이다. 사과의 생명은 타이밍과 진정성이다.. 더보기
[여적] 문어도 아프다(211124) 문어는 무척추동물 중 가장 지능이 높다. 말 잘 듣는 애완견 수준이라고 한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은 문어가 인간과 얼마나 잘 교감하는지를 보여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 문어 파울이 점쟁이로 유명해졌다. 우승팀을 포함해 8번의 경기 결과를 모두 맞힌 것이다. 문어는 음식으로도 인기다. 살아 있는 문어를 데친 문어숙회는 경북 북부지역에서 제사상에 빠져서는 안 될 정도로 대접받는다. 영국 정부가 최근 문어·오징어 같은 두족류, 바닷가재·게 같은 십각류에도 동물복지법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어류도 고통을 느끼니 살아 있는 상태로 요리하지 말라는 말이다. 인간과 동물의 공통점 중 하나가 고통을 느끼고, 고통을 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동물에게 부당하게 고통을 가해서는 안 된.. 더보기
[경향의 눈27] ‘플린트 수돗물 납 오염 사태’와 정치 실패의 대가(211118) 전 세계의 이목이 영국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쏠려 있던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에서 희소식이 전해졌다. 7년 전 ‘플린트시 수돗물 납 오염 사태’와 관련해 시민들이 주정부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이 6억2600만달러의 보상 합의안을 승인한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높은 관심 탓에 크게 조명받지 못했지만 세계 환경오염 역사에 획을 긋는 뉴스였다. 인구 10만명에 불과한 미 북동부 미시간주의 소도시에서 발생한 수돗물 납 오염 사태는 현대 미국에서 일어난 최악의 환경재앙 중 하나로 불릴 만큼 관심을 끌었다. ‘제2의 카트리나’ 논란을 부를 정도로 미국의 뿌리 깊은 인종적·경제적 불평등뿐 아니라 사후 처리 과정에서도 총체적인 문제점을 드러내는 등 정치적 파장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