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무기가 쓴 칼럼

[여적] 북극항로의 '피폭'(210524) 1990년 미·소 간 냉전 종식이 가져온 선물이 있다. 북극항로(polar route)의 개척이다. 냉전 시절 서울에서 미국 동부로 가는 가장 빠른 항로는 알래스카 앵커리지를 경유하는 우회 항로였다. 옛 소련이 자국 영공 통과를 금지해서다. 1998년 7월7일 뉴욕발 여객기가 논스톱으로 북극 극지방과 러시아 상공을 거쳐 홍콩에 착륙한 이후 본격적인 북극항로 시대가 열렸다. 북극항로는 항공사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비행시간 단축과 유류비 절감 효과를 톡톡히 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공 승무원에겐 공포스러운 길이다. 우주방사선 피폭 탓이다. 우주방사선은 우주에서 지구로 쏟아지는 높은 에너지를 가진 각종 입자와 방사선을 말한다. 피폭선량은 고도가 높을수록, 노출시간이 길수록 증가한다. 10㎞ 이상 상.. 더보기
[경향의 눈20] 문제는 철군이 아니라 드론이야!(210506)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말 취임 100일을 맞아 한 의회 합동연설에 이런 대목이 있다. “부모들이 싸웠던 전쟁에서 지금 복무 중인 병사들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9·11테러 때 태어나지 않은 병사들이 있다.” 아프간 전쟁이 세대를 관통할 만큼 오래됐다는 의미다. 바이든으로서는 9·11테러 20주년이 되는 올해 9월11일까지 철군하겠다고 한 보름 전 약속을 재강조한 것이다. 9·11테러 주범 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프간전은 20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럼 예정대로 철군한다면 아프간전은 끝나는 걸까. 흔히 전쟁을 끝내겠다는 정치인의 약속은 거짓말이라고 한다. 바이든의 철군 약속도 마찬가지다. 설사 철군하더라도 미국이 완전히 발을 빼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두 가지 이.. 더보기
[여적] 아프간 전쟁 20년(210415) 2001년 9·11테러로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은 애당초 시한이 없는 전쟁이었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한 조지 W 부시는 “(미국은) 지구상의 어느 테러조직이라도 찾아내 활동을 저지하며 격퇴시킬 때까지 전쟁을 끝내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아프가니스탄이 첫 공격 목표가 된 것은 피할 수 없었다. 9·11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의 은신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해 10월7일 미국의 공습으로 시작된 아프간 전쟁이 20년이 되도록 끝나지 않고 있다. 아프간은 동서문명의 교차로라는 지정학적 위치와 풍부한 지하자원으로 제국의 오랜 침탈 대상이었다. 기원전 알렉산더 대왕의 침략에서부터 이슬람과 몽골족, 인도 등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아프간은 침략자의 무덤이 됐다. .. 더보기
[여적] '외조의 왕' 필립(210412) 영국 역사에서 여왕은 6명뿐이다. 메리 1세(1516~1558)가 처음이고, 엘리자베스 1세·메리 2세·앤·빅토리아 여왕을 거쳐 현재의 엘리자베스 2세가 1952년부터 왕실을 이끌고 있다. 여왕 남편의 공식 칭호는 ‘The Prince Consort’다. 첫 여왕 메리 1세의 남편인 펠리페 2세는 스페인의 황금시대를 이끈 국왕으로 더 유명하다. 엘리자베스 1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여왕의 남편으로 부를 수 있는 첫 인물은 앨버트공이다. 대영제국 최전성기를 이끈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이다. 그는 미혼으로 즉위한 빅토리아 여왕과 결혼한 뒤 죽기 전까지 21년간 보필했다. 하지만 결혼 17년이 지나서야 여왕의 남편 칭호를 받을 정도로 푸대접을 받았다. 세계 최장수 군주인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 필립공이 10.. 더보기
[여적] 아파트 택배 대란(210409) 한국인 삶에서 아파트와 택배는 필요불가결한 요소다. 전국 총 주택 가운데 아파트의 비율은 62%다. 지난해 택배 물량은 34억개로, 1인당 65개꼴이다. 전년에 비해 21%나 증가했다.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이 가장 큰 원인이다. 갈수록 아파트도, 택배 물량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결합해 새로운 사회 문제를 낳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바로 아파트 택배 대란이다. 2018년 봄 경기 남양주시 다산신도시에서 본격적으로 불거진 택배 대란이 최근 재현됐다. 5000가구 규모의 서울 아파트 단지가 이달 초 택배 차량의 출입을 금지했다. 손수레로 각 가구까지 배송하거나 지하주차장에 출입할 수 있는 저상차량을 이용하라고 택배기사들에게 통보한 것이다. 택배노조는 이에 반발해 아파트.. 더보기
[경향의 눈19] 아마존 노조 실험, 노동의 미래를 묻다(210408) 지금 미국 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 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의 ‘노조 실험’ 결과다. 남부 앨라배마주 베서머에 있는 아마존 물류센터 직원들은 지난달 말 7주간 노조를 설립할 것인가에 대한 찬반투표를 마쳤다. 결과는 이달 중순쯤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찬성으로 결론이 나면 1994년 창업 후 27년 동안 이어져온 미국 내 아마존의 무노조 경영은 끝난다. 미국 내 800여 아마존 사업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 노조운동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조명받는 이유다. 아마존의 노조 실험은 사측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코로나19 위기는 아마존에 축복이었다. 지난해 매출은 급증했다.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이조스는 세계 최고 부자 입지를 더욱 굳혔다. 하지만 치부도 드러냈다. 노조 설립의 도화.. 더보기
[여적] 'SNS 시민군' 깃발 든 반크(210403) 시민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해 해결한 사건이 있다. 2015년 초 발생한 ‘크림빵 아빠 뺑소니 사건’이다. 임신한 아내를 위해 크림빵을 사들고 한밤중에 귀가하던 남편이 무단횡단하다 뺑소니 차량에 치여 사망했다. 유일한 단서인 현장 폐쇄회로(CC)TV는 화질이 좋지 않아 수사는 난항에 빠지지만 사고자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자 SNS는 바로 들끓었다. 누리꾼들이 ‘SNS 수사대’를 꾸려 CCTV 동영상을 추적하고 여론을 조성한 것이다. 결국 추적이 겁난 범인은 사건 발생 19일 만에 자수한다. ‘SNS 수사대’가 미궁에 빠졌을지도 모를 뺑소니 사건을 해결한 셈이다. SNS는 민주화 시위의 도화선도 됐다.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쓴 ‘아랍의 봄’ 시위가 대표적이다. SNS가 독재정.. 더보기
[여적] 라면왕(210329) 한국인이 일주일에 평균 1개 이상 먹고, ‘제2의 쌀’로 불리며, 많은 이들이 생애 첫 요리로 꼽는 음식은? 라면이다. 국내에 즉석라면(봉지면)이 도입된 지 58년이 됐다. 1963년 9월15일 선보인 삼양라면이 효시다. 초기엔 팔리지 않아 무료 시식과 사병 급식으로 내놓다가 도시화·산업화 붐을 타고 소비가 급증했다. 원조국 일본보다 5년 늦게 첫발을 뗐지만, 지금은 일본을 포함한 100여개국에 수출돼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한국인의 라면 사랑은 유별나다. 지난해 세계라면협회(WINA)가 내놓은 1인당 소비량은 연간 75.1개로, 단연 세계 1위다. 짜장면과 우동, 비빔국수 등 먹고 싶어 하는 모든 면이 라면으로 탄생했다. 라면 활용법도 다양해졌다. 김치찌개와 부대찌개는 라면이 들어가야 제격이다.. 더보기
[여적] ‘돼지 같다’는 비유(210320) 2008년 미국 대선 두 달 전, 난데없이 ‘돼지 립스틱’ 논란이 벌어졌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돼지 입술에 립스틱을 발라도 돼지는 돼지”라고 한 말이 발단이었다. 공화당은 첫 여성 부통령 후보 세라 페일린을 겨냥한 성차별적 비방이라며 발끈했다. 페일린은 며칠 전 수락연설에서 자신을 자식 뒷바라지에 여념 없는 하키맘에 비유하며 “하키맘과 투견의 차이는 립스틱을 발랐다는 것”이라고 했다. 오바마는 공화당 후보 존 매케인이 강조하는 ‘변화’가 소용없다는 의미로 사용했다며 사과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매케인도 한 해 전 민주당 경선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의 건강보험 계획을 비판하면서 똑같은 비유를 했기 때문이다. 미 정가에서 자주 쓰이는 ‘돼지 입술에 립스틱’이라는 표현은 .. 더보기
[여적] 샤를리 에브도의 '도발'(210315) 정치만평의 생명은 풍자다. 그래서 만평 속 정치인은 사실과 달리 우스꽝스럽게 묘사되거나 과장되기 일쑤다. 한 컷의 만평엔 촌철살인하는 신랄한 비판이 담겨 있어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반대로 논란을 불러 지면(온라인)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2019년 4월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다룬 뉴욕타임스의 정치만평이 그랬다. 트럼프를 유대인 모자 야물크를 쓴 ‘맹인’에, 네타냐후 총리를 안내견에 빗댄 내용이었다. 반유대적이라는 항의가 쏟아지자 그해 7월1일자부터 정치만평을 없앴다. 프랑스의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는 이슬람 창시자인 무함마드 조롱 만평으로 유명하다. 무슬림은 무함마드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걸 신성모독으로 여기며 금기시한다. 그럼에도 2006년 2..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