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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

[여적] 위기의 꿀잠(211106) “전남 여천군 소라면 쌍봉리 끝자락에 있는/ 남해화학 보수공장 현장에 가면, 지금도/ 식판 가득 고봉으로 머슴밥 먹고/ 유류탱크 밑 그늘에 누워 선잠 든 사람들 있으리….” 송경동 시인의 시 ‘꿀잠’ 첫 부분이다. 시인이 젊은 시절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노동자의 고단한 현실을 담은 것이다. 잔업과 철야로 부족한 잠을 메우기 위해 점심시간에 선잠을 잘 수밖에 없지만 그들에겐 그야말로 꿀잠이었을 터이다. 노동자에게 꿀잠만큼 달콤한 것은 없다. 그러나 해고노동자들에게 꿀잠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들이 있을 곳은 길바닥이나 천막, 아니면 저 높은 굴뚝이나 철탑, 크레인, 전광판 등이다. 한여름 땡볕에도, 한겨울의 살을 에는 추위에도 한뎃잠을 잘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랜 투쟁과 해고로 지친 몸을 잠시.. 더보기
[경향의 눈26] 언론인의 노벨 평화상 수상과 줄리언 어산지(211021) 올해 노벨 평화상은 언론인에게 돌아갔다. 필리핀의 두테르테와 러시아의 푸틴이라는 독재자에 맞서 언론 자유를 위해 용감하게 싸운 두 나라 언론인이 공동 수상했다. 언론인이 이 상을 받은 건 86년 만이라고 한다. 내심 스웨덴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받길 기대한 터라 적잖이 실망했다. 그럼에도 언론 종사자로서 반가웠다. 언론 자유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노벨위원회가 고마웠다. 다만 하고많은 언론인 중에 하필 이들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독재자는 언제나 존재했고, 이에 항거한 언론인도 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다. 영어의 몸이 된 채 잊혀가고 있는 한 언론인 때문이다. 줄리언 어산지. 2010년 기밀폭로 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를 통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 일지, 국무부 .. 더보기
[여적] 방관자 효과(211019) 1964년 3월13일 새벽(현지시간) 미국 뉴욕시 퀸스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강도의 흉기에 찔려 숨졌다. 단순 살인사건이었지만 대반전이 일어났다. 2주 뒤 보도된 뉴욕타임스의 ‘살인을 목격한 38명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기사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범행을 목격했으나 아무도 피해자를 도우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미 사회가 경악했다. 아무도 신고하지 않은 것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의문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사회심리학자 존 달리와 빕 라터네이였다. 두 사람은 1968년 심리를 알아보는 한 실험을 했다. 참가자들을 대기실에 두고 벽에 뚫린 통풍구를 통해 연기를 들여보냈다. 참가자들이 얼마나 빨리 신고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 더보기
[여적] 녹색 식민주의(211013) 오늘날 ‘친환경’은 절대선이다. 그래서 친환경을 의미하는 ‘그린(green)’이 붙으면 무엇이든 각광받는다. 그런데 ‘그린’이 붙어도 부정적 의미를 지니는 말들이 있다. 그린워싱(greenwashing)이 대표적이다. 친환경과 거리가 먼데도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환경주의를 뜻한다. 기업이 제품 생산 중 발생하는 환경오염 문제는 축소하고 재활용 같은 일부만을 부각시키는 행위로, 명백한 소비자 기만행위다. 녹색 식민주의(green colonialism)도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다. 이는 선진국이 후진국의 토지나 노동력 등을 착취해 높은 생활기준을 성취하는 것을 이른다. 개발도상국의 식량생산력의 급속한 증대 또는 이를 위한 농업개혁을 일컫는 녹색혁명, 선진국의 독성 살충제와 플라스틱 폐기물 등의 후진.. 더보기
[여적] 추곡수매(211009) 해마다 이맘때면 쌀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게 있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쌀 재배면적과 생산량 통계다. 쌀값에 직접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농가 소득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통계청은 8일 올해 쌀 재배면적(0.8%)과 생산량(9.1%) 모두 지난해보다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쌀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늘어난 것도 각각 2001년과 2015년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쌀 재배면적은 쌀 생산량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생산량은 표본조사를 통해 파악하는데, 지역별 쌀 생산력이나 재배품종, 기후 등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과거 국정감사 때 종종 엉터리 통계 논란이 일었는데, 실제 생산량이 통계와 차이가 나 시장에 혼란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쌀 작황이 호조라는 통계를 보는 농민의 입술은 바짝 타들어.. 더보기
[경향의 눈25] 괴상망측한 드라마(210923) 작가 존 스타인벡은 1960년 9월 뉴욕주 롱아일랜드에서 미국을 일주하는 자동차 여행을 시작한다. 그의 나이 58세 때다. 75일간의 여행 막바지에 스타인벡은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한 초등학교를 찾는다. 날마다 대서특필되던 흑인 등교 반대 시위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서다. 그해 2월 뉴올리언스 교육당국은 흑백 통합교육을 결정한다. 6년 전 연방대법원의 기념비적 판결인 흑백 간 학교 분리 배정 위헌 판결에 따른 것이다. 11월14일 6세 흑인 여자아이(미 흑인 민권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루비 브리지스)의 역사적인 등교가 시작된다. 맞불 반대 시위도 벌어진다. 시위를 주도한 이들은 백인 주부들이다. ‘응원단’으로 불리는 이들은 욕설과 야유로 유명하다. 오전 9시 정각 흑인 여자아이는 법원 집행관 4명의.. 더보기
[여적] 호주의 핵잠수함(210918) 영연방국가 호주는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국이다. 1946년 미 주도 글로벌 정보동맹인 ‘파이브 아이즈’에 참여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파병했다. 도널드 트럼프 때는 미국·일본·인도와 함께 안보협의체 ‘쿼드’에 참여했다. 세계에서 여섯번째로 큰 땅덩어리에 비해 군사력은 그다지 높지 않다.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에 따르면 지난해 호주의 전 세계 군비 순위는 12위(1.4%)다. 한국(2.3%·10위)보다도 낮다. 역내에 군사적 경쟁국이 없는 탓이기도 하다. 호주에 군사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 15일 미국이 영국, 호주와 함께 새 안보협력체 오커스(AUKUS)를 출범시키면서 호주에 핵잠수함 기술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첫 핵.. 더보기
[경향의 눈24] 보트피플, 세인트루이스호 그리고 아프간 난민(210826) 한 여성이 휴대전화 속 사진을 보며 흐느낀다. “두 딸을 두고 왔다. 난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한 남성은 “고맙다”는 말을 연발한다. 또 다른 남성은 기뻐하면서도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비자 발급에 필요한 서류를 담은 가방을 잃어버려서다.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에는 희비가 교차했다. 탈레반 재집권 후 예상되는 탄압을 피해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도착했다. 카불 함락 8일 만이다. 대부분 미 정부 협력자와 그 가족이다. 이들의 얼굴에는 안도와 함께 불안, 초조의 빛이 뒤섞여 있었다. 그래도 아프간에 남겨진 이들에 비하면 행운아들이다. 이륙하는 군용기에 타려고 활주로를 달리는 시민들, 공항 철조망 너머로 던져지는 아이들…. 카불 함락 후 카불공항.. 더보기
[여적] 카불 공항(210818) 공항은 흔히 한 나라의 관문으로 불리며, 그 나라의 이미지를 대표하기도 한다. 아프가니스탄 수도의 카불 공항은 전쟁으로 점철된 아프간의 슬픈 현대사와 궤를 같이한다. 1960년에 문을 열었지만 1970년대 말 이후 국제공항으로서 기능을 상실했다. 옛 소련·아프간 전쟁(1979~1989) 때는 소련의 군기지로 활용됐다. 소련 퇴각 후 탈레반 집권기에는 제한적으로 운용됐다가 2001년 9월 미국의 침공으로 파괴됐다. 2008년 11월 재개장했지만 하루 이용객은 200~300명에 불과했다. 군 공항 역할도 하지만 미군은 북쪽으로 40㎞ 떨어진 바그람 공군기지를 이용한다. 탈레반이 지난 15일 수도 카불을 20년 만에 재장악하면서 카불 공항은 유일한 탈출구가 됐다. 하지만 카불 공항은 한때 탈출하려는 아프간인이.. 더보기
[여적] 오바마 환갑잔치(210810) 버락 오바마는 역대 미국 대통령 중 다섯 번째로 젊은 나이에 백악관에 입성했다. 취임했을 때 만 47세였다. 8년 뒤인 2017년 퇴임했을 때도 유엔 기준 청년(18~65세)이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전직 대통령’이 됐지만 현직이 부럽지 않았다. 오바마는 부인 미셸 여사와 함께 강연과 책쓰기로 엄청난 부를 모았다. 뛰어난 사교성을 바탕으로 한 록스타 못지않은 인기 덕분이다. 그렇게 모은 돈은 부동산에 투자했는데, 그중 하나가 매사추세츠주 고급 휴양지인 마서드비니어드섬의 1200만달러짜리 맨션이다. 오바마에게 일생일대의 오점이 될 만한 일이 그곳에서 일어났다. 지난 7일 밤(현지시간) 열린 60번째 생일 파티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춤을 추는 그와 하객들의 모습이 공개됐다. 보안상 이유로 파파라치 접..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