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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 CJ대한통운에 택배노조와 단체협상 응하라는 중노위 결정(210604)

중앙노동위원회가 지난 2일 택배노조가 CJ대한통운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사건에 대해 CJ대한통운의 단체교섭 거부가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했다. CJ대한통운과 택배노조 간 단체교섭권을 둘러싼 분쟁에서 노조 손을 들어준 것이다. 택배노조가 CJ대한통운과 직접 교섭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과로사 등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려 온 택배기사들의 권익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택배노조와 CJ대한통운 간 분쟁의 최대 쟁점은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의 사용자이냐 아니냐였다. 택배사와 택배기사의 특수고용관계가 갈등의 요인이다. 대다수 택배기사는 CJ대한통운과 계약을 맺지 않고 지역별 대리점과 건당 수수료 계약을 맺는 특수고용노동자다. 당연히 노조 측과 회사 측의 주장이 엇갈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노위는 택배기사가 CJ대한통운의 택배사업 수행에 필수적인 노무를 제공하고, 회사 측이 만들고 관리하는 택배사업 시스템에 편입돼 있다고 봤다. 비록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과 직접 근로계약 관계는 아니지만 회사 측이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한다고 인정한 것이다. 그동안 대리점을 방패막이 삼아 각종 의무를 회피해 온 CJ대한통운에 철퇴를 가한 셈이다.

 

중노위 판정은 원청의 사용자성을 처음 인정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특고노동자를 비롯한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원청과의 교섭에 물꼬를 터준 것이다. 택배기사뿐만 아니라 다른 특고노동자들은 원청-하청이라는 간접고용 형태다. 특히 특고노동자들은 ‘무늬만 사업자’로 권익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택배노조도 다른 택배사뿐만 아니라 다른 특고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중노위는 이번 판정이 CJ대한통운과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 노조 사이의 단체교섭과 관련한 개별 사안을 다룬 것으로, 원청의 하청노조에 대한 단체교섭 의무를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취지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향후 중노위가 적극적인 판정을 내리길 기대한다.

 

CJ대한통운은 중노위 판정에 대해 행정소송 등 법적 투쟁을 예고했다. 중노위 판정의 취지나 특고노동자의 권익을 확대하는 시대적 흐름에도 역행하는 일이다. 택배기사를 비롯한 12개 직종 특고노동자들은 다음달부터 고용보험을 적용받는다. 더욱이 택배노조와 진보당은 3일 현장에서 여전히 전담 분류인력 투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지난 1월 맺은 사회적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CJ대한통운은 택배노조와 교섭은 물론 약속한 사회적 합의 이행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이번 판정이 택배사와 택배노조에 상생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