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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 아동학대 경종 울린 정인이 양모의 무기징역형(210515)

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모가 1심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3부(이상주 부장판사)는 14일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양모 장씨에게 “살인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검찰이 구형한 사형에는 못 미치지만 법원의 아동학대 선고 중 최고형이다. 법원이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정도로 장씨의 범죄 행위를 위중하게 본다는 의미다. ‘정인이 사건’과 같은 불행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이번 판결이 아동학대 범죄에 경종이 되길 바란다.

‘정인이 사건’은 양모의 무자비한 폭행과 뻔뻔함, 경찰의 부실 대응 등으로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장씨는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정인이의 복부를 강하게 밟는 폭력을 행사하고, 생명이 위급한데도 119 구급차 대신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며 피해자 보호조치를 하지 않았다. 도저히 양육과 보호 책임이 있는 양모의 행동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반인륜적 범죄의 극치다. 경찰의 소극적인 대처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정인이는 다니던 어린이집 교사와 양모의 지인, 의사의 학대 신고로 죽음을 피할 수 있었지만 경찰은 양부모 말만 믿고 무혐의 처리했다. 믿었던 양부모와 경찰이 정인이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나 다름없다.

 

파장도 컸다. 검찰은 당초 양모에게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했다가 비판 여론이 비등하자 살인죄로 공소장을 변경했다. 국회는 지난 2월 아동학대살해죄를 신설하고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정인이법’을 통과시켰다. 고의로 아동을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하면 살해죄를 적용하도록 처벌 수위를 강화한 것이다. ‘7년 이상’으로 규정된 이 죄의 형량 하한선은 ‘5년 이상’인 살인죄보다 높다. 하지만 최근 입양한 두 살배기 딸을 학대해 의식불명에 빠뜨린 양부가 구속되는 등 아동학대는 끊이지 않고 있다. 정인이 사건에서도 드러났듯 입양 절차뿐만 아니라 입양 이후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아동학대는 일어나서는 안 될 반사회적 범죄다. 그럼에도 가정 내에서 은밀히 이뤄지는 탓에 적발도, 범죄 입증도 쉽지 않다. 아동학대를 막으려면 재판을 통해 지속적이고 엄중한 단죄를 하고 치밀한 예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회는 법안 발의 후 석 달째 잠자고 있는 아동학대 진상조사특별법 제정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정인이의 안타까운 죽음과 판결이 아동학대를 획기적으로 근절하는 전기가 되도록 사회 전체가 역량을 모아야 한다.